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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드라마.장국영.경극을 통한.인생.사랑.우정.패왕별희.FHD.블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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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My.Concubine.1993.1080p.BluRay.265.mkv ( 3.2 GB )  +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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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북경 경극학교에 맡겨진 두 소년
두지와 시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길고도 고생스러운 교육과정을 마친 후
섬세한 미소년 두지에게는
당연히 여자 배우 역할이 주어지고
시투는 군인 역을 맡게 된다.

 

 

*****  여기서 부터 읽기전 맨밑으로 가서,[설명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패왕별희]관계자들이 말하는
장국영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1 첸 카이거 (각본/감독)


홍콩에서 장국영을 처음 만난 날.
내가 <패왕별희>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장국영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그림처럼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경청하고 있었다.
 얘기를 마친 후 나는

 

“당신이 청데이를 맡아줘서 기뻐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그런 나의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한듯이

 

"저는 청데이에 적격이에요.
저는 항상 예술 속에서 살고 있고,
제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제 자신이 바로 청데이예요.”


라고 말해서 그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설명 ( 장국영은 한 인터뷰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며 자신의 영어 이름도 중성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레슬리라고 지었다고 말했답니다 )--


그랬던 내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었는데…
샬로에게 보검을 찾아주기 위해
원대인의 집을 찾았던 데이가 유린당하고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다가
 일본군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이었다.
장국영을 인력거에 태워놓고
우리는 촬영준비를 한 후 촬영에 들어갔는데,
장국영이 탄 인력거의 덮개를 들추는 순간
장국영의 입가에 번진 연지는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장국영의 눈빛에 담긴 절망과 비애가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실제로는 몇 초 되지 않는 굉장히 짧은 장면이고
영화에선 데이가 울지 않는데,그가 촬영이 끝난 후에도
데이의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계속 울었다.
나는 그저 조명을 모두 끄라고 지시하고
 장국영이 어두운 곳에서 혼자 감정을 추스르게 해줬다.
그때 나는 비로소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이 말했던


 “저는 청데이예요"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장국영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인물에게
투입해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는 배우였다
.........중략.......

그는 정말 청데이처럼 살다가 떠났다.
사실 나는 그와 마주보고 있을 때에도
왠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장국영의 눈빛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마치 먼 과거의
어느 화려한 꿈속에서나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2 송소천(경극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국영에게 나를 소개해준 사람은
 패왕별희의 원작자인 이벽화다.
그가 너무나 유명한 세계적인 스타여서,
 거만하거나 까다로울까봐 내가 걱정하자
이벽화는 장국영처럼 상냥하고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역시나,그를 만나자 나의 모든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날 우린 바로 친해져 버렸다.
그보다 네살이 어린 나는 촬영하는 내내
 장국영의 숙소인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그의 어시스턴트를 자처했다.
장국영은 촬영 두 달 전에 이미 북경으로 와서
경​극연습을 시작했는데,
그의 학습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프로 경극배우들도 반년이나 걸려야 하는 동작조차
열흘 만에 완벽하게 해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내가 놀라워할 때마다, 장국영은 기뻐하며


"몰랐지?나는 전생에 경극배우였단다.”


라고 농담을 했다.
데이의 가발과 머리장식은 굉장히 무거워서
매일 7-8시간 동안 그걸 쓰고 있으면
프​로 경극배우들조차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첸 카이거 감독도 휴식시간에는 벗고 있으라고 권했는데,
 촬영 장면의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던 장국영은
휴식시간에도 내내 무거운 가발을 쓰고 있길 고집했다.
패왕별희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던 날
 장국영이 전화를 해주었다.


“ 소천아 다 네 덕분이다.
너의 메이크업이 없었다면
 데이가 그토록 예쁘지 않았을 거야.”

“ 그렇지 않아.형의 아름다운 얼굴이 없었다면
나도 고운 화장을 할 수 없었을 거야”


모든 일정후 홍콩으로 돌아간 장국영은,
경극 사부님들과 나를
홍콩으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영화판 일이라는 게 보통 일이 끝나면
 모든 관계가 끝인게 대부분이라
그의 행동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장국영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나에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제대로 보답하고 싶어.”


장국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서,
경극 사부님들과 나의 안부를 물었다.
언젠가 장국영이 내가 분장을 맡은 경극을 보러
 북경까지 와서,공연이 끝나고 나에게 말했다.


“소천아 너는 절대 이 일을 그만두지 마.
너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 말은 나를 몹시 감동시켰다.
그는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타인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매번 내게 전화를 할 때마다


“소천아 잘 지내?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셔?
장선생님과 사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셔?”


주변 사람들의 안부까지 빼놓지 않고 물었다.
장국영은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오랜 무명 시절과 가난도 모두 극복했는데,
도대체 마지막에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장국영은 종종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정에 굶주려있고,
항상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원했었다.
그랬던 그가 우리를 남겨놓고 홀로 떠나가 버렸다.
그가 하늘에서 혼자 쓸쓸하게 지낼까봐
걱정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계속 기억해주고
 사랑해줘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3 장만령(중국 경극원의 최고 실력자이자, 장국영의 경극 스승)


남편 사연생과 나는 패왕별희 촬영 때
그의 경극 지도교사로 처음 만났다.
첫째 날 우리가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남편이


“당신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간 거예요?”

“괜찮아요.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서야
그가 38.9도의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곧장 레슨을 시작하기를 원했다.
장국영은 이전에 경극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의 이해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매일 4시간씩 레슨을 받고,
 그 후 호텔방에 돌아가서도 연습을 계속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아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고,
내가 칭찬을 해주면 뛸 듯이 기뻐했다.
제대로 하지 못해 그의 동작을 지적 할 때마다


“선생님 오늘은 잘 못하지만,
내일은 꼭 제대로 해보일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완벽한 동작을 내 앞에서 선보이곤 했었다.
장국영은 예술에 대해 너무나 진지했다.
우희를 연기하기 위해 평소에도
무대의 스텝으로 걸어 다닐 정도로
 완전히 우희의 역할에 몰두해있었다.
평생을 경극에 몸담고 살아온 나조차
지금까지 장국영처럼
예술에 대해 헌신적인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였고, 몹시 바빴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북경을 방문할 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꼭 우리 집에 찾아와주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짧은 인사만 하고 가기도 했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싸와서
우리를 대접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걸어주었다.
남편과 내 앞에서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우리 집에 오면 항상 바닥에 앉아서
무릎을 안고 허물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가 온다고 하면 나는 항상 당근 쿠키를 굽곤 했는데,
그가 매우 맛있게 먹어줬기 때문이다.
97년에 그가 홍콩에서 콘서트를 할 때,
 우리 가족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해줬다.
그리고 호텔까지 따라와선
우리가 호텔방에 무사히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인사를 한 뒤 돌아갔다.
업무 상 우리의 교제는
사실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 부부는 그저 경극에 종사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불과했다.
장국영은 그런 우리에게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무한한 우정과 존경을 표현해주었다.
장국영의 마음에는 항상 애정이 넘쳤다.
사람과의 교제에서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을 보는 일이 없이
연장자,친구,어린아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살갑게 대했다.
내가 결코 잊지 못하는 일은
98년에 남편이 암에 걸렸을때이다.
소식을 들은 그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곧장 북경으로 찾아왔다.
 당시 남편은 집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장국영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남편을 끌어안고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솔직히 내 남편은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내 앞에서조차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장국영이 자신을 끌어안자마자
남편이 울기 시작했다.
 장국영의 눈도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는데,
남편을 위해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남편을
자상하게 설득했다.


“더 드셔야 돼요. 많이 드셔야 좋아져요.
뭐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제가 가서 사올게요.”


그리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남편의 손을 잡고
남편의 곁을 지켜주었다.
지금은 그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 없다.
그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종종 생각한다.


“여보, 국영이 외롭지 않게
당신이 잘 지켜주세요.”

 

 

**** [설명글] ****


위의 글은 우연히 영화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인터뷰 자료예요..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장국영이란 사람과의 일화들을 보면서
​몰랐던 그가 정말 생각보다
 따뜻하고 사랑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리고.사랑을 원했던 사람이었구나...느껴져서
울컥 영화도 보기전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가 많이 그립네요..
저도 이럴진데..
장국영 팬이신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듯 싶어 첨부해봅니다..
글이 너무 길어 정리를 해도..기네요
관심없는 분들은 패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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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확인이 늦어 죄송함다.꾸벅   
      위의 설명 내용을 확인 해 주세요.  
    영화를  더 즐길 수 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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